Blog

아이들에게도 서사가 있어야 한다.

아이들에게도 서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아이가 성인이 될 20살까지 자기만의 서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서사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주체로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며 살아왔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자기서사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으며, 인내와 시간을 통해서만 생겨난다. 혹자는 이를 성취 경험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다.

삶이란 거창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성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정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소명이라고 한다면 정확히 그것이다. 하지만 '서사'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킬 수 있기에 나는 이 단어를 선택한다.

서사가 생기려면 크던 작던 자기 존재성 안에서 결정한 도전이 있어야 한다. 도전만으로도, 존재성만으로도 부족하다. 존재성이 불러온 도전이 있어야 서사가 생긴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괜찮다. 아이들은 스스로 하고 싶은 모험을 정하고 충분한 시간 동안 시도해 볼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쓰레기 문제가 자신에게 다가와 자기 존재성에 따라 행동하게 되었다면 그것이 서사가 될 수 있다. 어떤 아이는 학교 제도를 바꾸자고 의견을 낼 수 있고, 어떤 아이는 쓰레기 문제를 알리는 글을 투고하고, 또 어떤 아이는 새로운 쓰레기통을 디자인할 수도 있다.

무언가가 자신에게 의미 있게 다가오고 그것을 위해 스스로 행동하려 할 때, 그 순간 자신의 존재성이 발현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시도해보니 생각처럼 되지 않을 수도 있고, 인내가 필요하기도 할 것이다. 과정에서 자신의 다른 존재성이 발현될 수도 있다. 부모나 교사로서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찾아온 의미를 알아볼 수 있는 감각을 갖고, 그것을 함께 응원하고 지원해 주는 것이다.

계속해서 다른 의미가 찾아오고 그것을 실행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에게 다가온 사건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부모나 선생님이 이를 알아보려면 스스로 서사를 만들어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아이에게 찾아온 사건을 소중한 선물로 알아차릴 수 있다.

서사는 오직 서사를 통해서만 발전한다. 서사를 만들기 위한 준비란 있을 수 없다. 서사는 삶 그 자체이기에 오직 살아냄으로써만 배울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자전거 타기 매뉴얼을 완벽히 외운다고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다. 작은 서사를 만들어 본 아이들만이 다음의 더 큰 서사에 초대받는다.

서사는 관계를 통해 찾아오기도 한다. 어떤 친구와의 어려운 관계로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부모와 교사들은 이런 사건이 찾아올 때, 이 아이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감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아이의 존재성에 이 사건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부모와 교사들은 자신의 삶에서 서사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서사는 실패로 전개되기도 하고 성공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성공만이 서사가 아니다. 우리는 실패를 통해 더 선명하게 자신을 알게 되고, 더 분명한 미래로 나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함께 할 사람들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그에게 서사가 있는지를 살핀다. 서사가 있다는 것은 스스로 의미를 찾아 결정했다는 뜻이며, 자기 안에서 비범한 노력을 한 경험이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사가 없는 사람들은 쉽게 안주하며, 다른 이들이 서사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열정적으로 몰입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평균과 합리성 뒤로 숨기 일쑤다.

이 시대에 평균과 합리성 뒤로 숨는 사람들은 AI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AI가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이 하는 일은 컴퓨터나 기계가 훨씬 잘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점점 몰입한 일의 본질적인 면까지 다가간다. 본질이라는 것은 오직 열정적으로 몰입하는 사람들에게만 자신을 드러내며, 과정에서 그 본질과 자신의 존재성이 다가감을 경험하게 된다. 즉 자신의 존재성이 그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관계론적인 세계관을 갖는다고 표현하곤 한다.

왜 서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본질적인 깊이까지 다가가게 될까? 그 사건이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출발했으며 그럴 때 자아는 그것을 알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런 앎은 타자화 된 일상의 사건과는 완전히 다른 가치를 갖게 된다. 그 사람은 이런 앎에서 동력을 얻는다.

이 동력은 해결하고자 하는(알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되어,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뚫고 들어가 그것을 생생하게 만나게 된다. 나는 이 생생한 만남이 진정한 교육이라고 믿는다. AI는 우리가 그 본질을 생생하게 만나지 않아도 우리에게 잘 설명할 수 있다. 그것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학습해 표현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이 직접 생생하게 만나는 경험이라는 것은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하기에 어떤 AI도 대신해 줄 수 없다. AI는 이런 만남의 기쁨을 알고 자신의 존재성으로 그것에 다가가기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축복과도 같다.

하지만 그런 생생한 만남을 경험해 보지 못했으며 타자화 된 지식을 얻어내기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 AI를 대한다면, AI는 가혹하게 그들을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사를 만들어가는 경험이 지속되면, 사건들이 서로 연결되고 자신이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소명(Calling)을 받았다"고 표현한다.

서사를 극대화하는 교육이란 무엇일까? 어떤 환경에서 이런 서사가 만들어질까? 이런 서사를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렇다면 부모와 교사는 어디까지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앞으로 이 부분을 생각해 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나는 한국 사람으로써 우리 한국 교육 제도가 안타깝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청소년 시절 획일적인 교육과 경쟁속에서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을 제공받지 못한다. 자신만의 서사가 생길수 있는 사건들을 만났다 하더라도 어른들과 교육 시스템에 의해서 질식되고 만다.

댓글 (1)

을수

test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0 / 500